음반으로 풀어본 김태원과 이승철의 갈등 <1편>
불운의 명곡 '희야'에 숨어 있는 김태원과 이승철의 갈등
나는 부활이 좋다. 왠지 모르게 1집부터 부활에 끌렸다. 이유를 모르겠다.
사실 라디오를 통해 '희야'를 처음 듣고 신선함에 반해 그들의 1집을 구매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전곡을 듣는 순간 그리 감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나쁘지도 않았지만 추천할만한 앨범도 아니었다.
비록 '희야'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히트시키기는 했지만 좀 씁쓸한 생각을 가지게 하는 곡들도 있었고 부활의 팬클럽 회장이라고 밝힌 분의 '라우드니스를 지옥으로 보내주겠다'라는 대목에서는 하드록 팬 층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기도 했다. 록음악을 많이 들으신 분들은 그 이유를 잘 알 터이니 그만 줄인다. 분명한건 당시 내 음악 성향으로 보면 외면해도 될 만한 음반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부활의 알 수 없는 매력이 나를 끌었다. 결국 2집도 3집도, 그들의 음반을 여러 장 구매했다. 결과적으로 내 선택이 잘 못된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 나는 부활의 새로운 앨범을 기다리고 있다.
글을 읽다보면 남자의 자격 때문인지 김태원에게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랐던 건 김태원과의 이승철에 대한 편 가르기가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해당 글에 내용과는 상관없는 편 가르기 식의 댓글들이 많이 달렸고 김태원과 이승철 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편 가르기가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설령 김태원과 이승철의 사이가 나쁘다 할지라도 그들의 갈등과는 무관할 듯한 퀸과 딥퍼플도 등장 했고 그 이유 또한 너무도 다양했다.
20년전 감정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면 복잡하게 생각 할 필요없다. 단순히 생각하면 쉽게 보인다.
모든 분들이 공통적으로 뽑고 있는 갈등의 원인인 부활의 해체에 대해 오늘부터 그들이 함께했던 부활 1집과 2집의 음반을 통해 또 관련 일화를 통해 3회에 나누어 내 생각으로 본 부활의 해체, 갈등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로 하겠다.
먼저 '희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도록 하겠다.
다들 아시다시피 '희야'는 김태원의 곡이 아니다. 작곡가 양홍섭의 곡이다. 양홍섭은 당시 늘어지기만 하던 발라드의 비트를 16분 음표로 쪼갠 감각적인 곡 '슬퍼지는 내모습'을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뛰어난 작곡가 인듯 하다.
김태원도 '처음 들었을 때 내 곡을 포기할 정도로 필이 왔다'라 말한 적이 있다. 아마도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 대한 타이틀 포기를 말하는 듯싶다. 어찌되었건 '희야'는 록음악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그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 그 무엇이 있는 곡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한다면 김태원의 편곡 감각이 없었다면 ‘희야’의 성공도 보장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잔잔히 진행되던 보컬라인에서 이어지는 기타 솔로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일 뿐 아니라 전체적인 편곡 또한 작곡 못지않은 역할을 했다고 보여진다. 결국 양홍섭의 작곡과 김태원의 편곡 그리고 이승철의 보이스가 만들어 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내가 왜 김태원과 이승철의 갈등 원인 중 첫 번째로 '희야'를 뽑았는지 말해 보도록 하겠다.
'희야'는 부활을 있게 해준 명곡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승철은 이 곡을 충분히 소화해 내지 못 했다. 음반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라이브를 통해서는 '원곡'의 감동을 느낄 수 없었던, 갈등까지는 아니어도 두 사람 사이에 불만이 있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한다.
노래를 들어 보면 어느 대목에서는 쥐어짜내고 또 어느 대목에서는 이건 노래라기보다 악을 쓰는 부분도 있다. 도대체 녹음을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 마저 들게한다. 이는 당시 이승철의 가창력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희야'가 좋은 곡임과 함께 상당히 어려운 곡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부활이 과연 라이브 무대에서 앨범내용 대로의 '희야'를 보여 줄 수 있었을까? 모르긴 해도 사실상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 ‘희야’를 한번 살펴보면서 김태원과 이승철 서로가 가졌을 불만에 대해 찾아보자.
'희야'의 조성은 Eb이다.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잘 안 쓴다. 특히 록밴드에서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조성이다. 그렇다면 Eb을 사용했을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김태원의 느낌이 Eb에 떨어졌을 수 있다. 음악에 있어 그 음이 주는 느낌은 절대 적일수도 있다.
두 번째는 이승철의 음역에 대한 절충에 의해 결정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이점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
아무런 반주 없이 '희야 날 좀 바라봐'로 시작하는 대목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 한부분만으로도 곡 전체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기에도 충분하다. 이 부분의 느낌을 반드시 살려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김태원이 감이었건 이승철의 음역을 고려하여 조절을 한거건, 곡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더 이상 낮출 추 없는 마지노선이었을 것 같다. 나 역시 여기에서 음을 더 낮추었다면 '희야'의 성공을 보장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더한다면 분명 이승철 본인은 음을 낮추거나 후렴 부분에 대한 수정을 원했을 것이다. 설령 그 자신도 느낌을 살리자는 부분에 공감하고 녹음을 하였다 치더라도 이승철에게는 '희야'가 분명 부담스러운 곡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조금 더 '희야'를 쉽게 풀이해 주면 그 음들이 내려 올 줄은 모르고 위로만 올라가는 곡이다. 그 어떤 가수이건 노래하기 가장 힘든 음역에서 계속 불러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곡이다. 특히 후렴의 마지막 '오 희야 오 날좀 봐' 의 부분은 감동을 전하기에는 충분했지만 과연 이것을 소화해 낼 수 있을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할 정도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하면 이 부분을 부르기 위해 허리 아대를 하고 그 부분만이 올 때까지를 기다렸다가 부른다 할지라도 무리가 있어 보일 정도로 어렵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했다면 한 코미디 코너였던 '고음불가' 속의 이승철을 상상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승철의 가창력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건 이승철의 가창력이 아니라 그만큼 '희야'가 너무 어려운 노래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차라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틸하트의 '쉬즈곤'은 음역만 된다면 부르기 수월한 곡이라 할 수 있다. '희야'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그럼 어떤 그림을 그려 볼수 있을까?
원곡대로 합주를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콘서트는 더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외국 곡을 카피하여 합주하는 것이라면 그 곡이 그렇게 생겼기에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희야'는 부활의 대표곡이다. 자신들의 곡을, 그것도 앨범까지 발표하여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원곡' 그대로를 연주 할 수 없다면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을까. 김태원도 이를 모를리 없었을 것이고 불만 또한 없었을리 만무하다. 후반부를 수정하여 합주하고 콘서트를 하였다 할지라도 이미 다른 파트는 보컬의 높고 안정된 샤우트가 필요한 편곡을 바탕으로 연주되고 있다. 또 당시 김태원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기타리스트였다. 그에 반해 이승철은 신인에 불과했다. 그 뭔가 그려 볼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이승철은 불만이 없었을까? 당시 말로 표현은 못했을지 언정 그 또한 불만이 상당했을 것이다.
원곡대로 '희야'를 부르려면 다른 멤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대 자연을 느끼면 등산을 하고 있었다면 이승철은 엄홍길대장의 히말라야 정복 처럼 등산이 아니라 높은 산을 정복해야 하는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설사 수정을 했더라도 그 어떤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터이니 그에게 역시 불만이 싸였지 않았을까 싶다. 이승철 본인이야 말로 더 부르고 싶어, 더 잘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아이러니 하지만 그들을 있게해준 '희야'속에는 두 사람간의 불만 또한 담겨져 있었을리라 생각해 봄직하다.
노래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내가 소화 할 수 있는 음역 내에서 어느 정도 기교를 부릴 수 있는, 노래를 하면서 자신도 그에 빠져 그 느낌을 전달 할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어야 한다. 다음 음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는 결코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없다. 물론 록음악에 있어 그보다 필이 우선 한다 할 것이다.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어느 밴드에서도 쉽게 찾아 볼수 있다. 이 것을 누구의 잘잘 못으로 생각하면 안 될듯 한데 참 아쉬운 부분이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분명해 보이는 건 '희야'도 이들의 불만과 관련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며,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듯 이승철은 '희야'를 리메이크 하면서 후렴구를 자신에 맞도록 어레인지를 하게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샤우트의 '희야'를 박명수표 '희야'로 가끔 만날 수도 있게 되었다. 원곡이 감동이 너무 아쉽다. 우리가 부활에 이끌렸던 것은 '원곡의 희야'이지 '변형된 희야'가 결코 아니었다. 물론 변형된 곡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원곡의 희야'를 콘서트를 통해 들어 보고 싶었을 마음이 어디 나 뿐이었을까. 글을쓰다 보니 음반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원곡 희야'가 너무 불운해 보이기도 했다.
부활은 국내 최고의 명밴드다. 이승철 역시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훌륭한 가수다. 또 밴드는 밴드일 뿐이다. 서로 다른 이견을 가진 인격체가 모여 운영되는 조직이다. 세계적인 밴드와 로커들도 자신의 생각에 따라 이리저리 팀을 옮기고 또 다른 밴드를 만들기도 한다. 내가 싫으면 안 하는 것이 밴드다. 팀 해체의 이유가 아직까지 그들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이보다 나를 더욱 아쉽게 하는 부분은 아직도 이승철의 '희야, 네버엔딩 스토리'리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분명 부활의 곡들이다. 그 곡들을 들으려면 이승철이 아닌 부활의 공연장으로 가야함이 마땅할 것인데 그러치 못한 록밴드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어떤 것이던지 공부를 해야 하는 부분이 나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재미없었을 글 끝까지 읽어 주심에 감사드리며 다음으로 이어질 2회편은 재미있는 관련 일화와 함께 재미있는 글로 구성하고 있다. 조만간 등록하도록 하겠다. 앞서 말했지만 이 글은 3편까지 이어진다. 성급함 보다 완결 후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