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 천재가 만든 티삼스의 '매일매일기다려'
상사의 눈치를 보며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실적은 오르지 않고 어김없이 날아오는 상사의 '그러려면 사표써'라는 반협박에 그냥 사표를 내던지고 뛰쳐나가고픈 충동을 안 받아 본 직장인이 있겠는가. 그럴 때면 '사랑하는 가족이나 애인'이 떠올라 이를 꾹 참는다. 그놈의 쥐꼬리만 한 월급을 떠올리며 이를 달랜다.
이런 일상에 지친 직장인의 애환을 달래주는 친구가 있으니 바로 '술'이다. 퇴근 후 동료들과 '술 한 잔'으로 그 죽일 놈의 '마부장'을 안주 삼아 한잔 두잔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지친 마음도 풀리고 마치 성인군자가 된 것처럼 '마부장'의 입장도 이해를 해주고 내일을 기약한다.
내일을 기약하려면 집에 가서 잠을 자야 할 것이 마땅 할 것인데 '술을 깨기 위한'이란 그럴듯한 변명으로 찾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노래방이다.
누구에게나 이른바 18번이 있다. 그것이 트로트이건 록이건 반드시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에게는 소중한 기억과 사연도 담긴, 내 마음을 알아주는 명곡이 있다.
난 개인적으로 노래방을 '전국노래자랑'으로 잠시 착각하는 듯한 사람들에게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아싸아싸 의쌰의쌰'하며 분위기 실컷 띄워 놓으면 그 잘난(?) 가창력 한방으로 여기가 노래방인지 교회인지 절인지 착각할 정도로 사람을 숙연하게 만든다. 어느새 '아~ 노래방 끝날 때 까지 저 마이크가 입에 들어가서 빠지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작은 소망을 담은 기도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취향이 다른 법이고 그것을 통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떤 것이 좋고 싫고를 함부로 말할 수 있겠냐만은 절대 내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이글을 읽고 있는 분의 노래방 18번은 어떤 곡인가.
[이미지 출처 : 파랑돌 님]
많은 노래가 있을 것이다. 사람 개개인 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난 티삼스의 '매일매일기다려'를 즐겨 부른다.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되도 않는 음역의 곡이지만 악으로 깡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길거리에서 이랬다간 '미친놈' 소리와 함께 바로 경찰차 뜰것이다. 누가 들으면 그야 말로 고성방가다. 목이 쉬어라 부르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확 풀려 버린다.
이번에는 '불운의 천재'가 만든 티삼스의 '매일매일 기다려'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 해보기로 한다.
여자가수 '소찬휘'도 즐겨 불렀고 지금도 수많은 인디밴드들이 이곡을 연주한다. 20년이란 세월도 명곡 앞에서는 도리가 없는 듯하다. 인디밴드가 있는 한, 록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결코 잊혀지지 않을 명곡이다.
오늘의 주인공인 티삼스는 1987년 강변가요제를 통해 데뷔하게 된다. 인하공전(당시)의 밴드명도 티자, 삼각자, 스케일자의 첫자릴 따온 인하공전의 전통적인 밴드이다. 당시 그들의 출연은 분명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보컬 김화수의 샤우팅은 당시 발매된 국내 록밴드의 그것보다 파워풀 하고 시원하다. 또 그런 하드록 곡이 강변가요제를 통해 알려졌다는 것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곡 좋아하시는 분들 상당히 많으리라 생각된다.
이제는 간혹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을 뿐이지만 '매일매일 기다려'는 지금의 가치보다 더 인정받아야 하는 한국 록음악의 명곡임에 틀림없다.
[이미지 출처 : 파랑돌 님]
티삼스는 대학생으로 구성된 팀이다. 그리고 대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강변가요제를 통해 데뷔를 했다.
여기에 '불운의 천재'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최창환'의 길고도 짧은 음악 인생이 담겨져 있다.
티삼스의 중심에는 '최창환'이 있었다. 당시 그룹의 맏형인 베이스주자 조성욱을 찾은 그는 한뭉큼의 악보를 꺼낸다.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등 모든 밴드 스코어를 그려왔다. 작사,작곡, 편곡은 물론이고 해당 연주주자가 어떻게 연주를 해야 하는지 모두 최창환 혼자 만들어 왔다. 쉽게 말해 그 곡안에 담긴 모든 '콩나물'을 최창환 혼자 그린 것이다. 보컬라인부터 드럼까지 모든 음은 그의 가슴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에는 미디음악이 사실상 없었던 시절이다. 20년이 넘은 곡이라 할지라도 그 곡안에 담긴 섹션 부분들은 지금 들어도 그리 촌스럽지가 않다. 참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1987년 제 8회 MBC 강변가요제 가창상,동상이라는 성공적인 데뷔와 당시 젊은 층의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통해 이들은 1집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초대받은 아침'을 발표하게 된다. 큰 인기는 아니었지만 히트를 하게 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티삼스는 인하공전 후배들에게 더욱 큰 성공을 바라며 그 이름을 물려주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하지만 1집 앨범에는 최창환이라는 이름이 없다. 만약 그가 존재했다면 티삼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물론 티삼스의 멤버들의 실력은 상당했다. 베이스주자인 조성욱은 티삼스를 거쳐 신촌블루스등에서 활약 했으며 작곡가로도 많은 활동을 했다. 누구나 재미있게 본 만화 영화 '핑크팬더'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매일매일기다려'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바로 최창환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일까? 개인적인 사정을 다 말할수 없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과 사고방식이 그를 팀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한 천재 작곡가의 음악활동은 멈추게 된다. '다른 팀에서 하면 되지' 라는 생각을 가지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당시 우리나라 음반시장의 현실은 지금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더욱이 록음반을 발매하기란 '영구가 서울대 들어가는 것을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참 아쉬웠다.
당시 신촌블루스에서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던 티삼스의 리더 조성욱은 이렇게 회상했다.
" 최창환이 얼마나 음악을 하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또 우리를 있게 해주었는데……. 현실이 이런데……. 너무 미안하다."
그 후 최창환은 악기점을 하였다. 후덕해 보이는 외모만큼 마음도 후덕하여 단골이 상당히 많았다. 오늘 우연히 어떤 분의 블로그를 통해 '매일매일기다려'를 듣고 있노라니 시대를 잘 못 타고난 천재 작곡가와 베이스연주자가 생각이 났다. 음악성 좋고 사람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이 왜 크게 빛을 못 보는 건지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것이 우리나라 음반시장의 현주소다. 뮤지션은 만나보기 힘들고 스타만 판치는 현실을 누가 만들었는지 참 원망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