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으로 풀어본 김태원과 이승철의 갈등 <2편>
                                김태원 1인 밴드 '부활'의 객원 보컬 이승철

지난 1편에는 그들을 만들어 준 명곡 '희야'를 통해 김태원과 이슬철이 혹시라도 가질 수 있을 법한 불만을 이야기 해보았다. 어찌 보면 현명한 선택이었을 수 있겠다도 싶지만 이승철의 음역이 존중되지 않았던 것은 맞을 듯하다. 이런 일은 부활뿐 아니라 거의 모든 밴드에서 일어났었다. 그 유명한 시나위를 예를 들면 공연을 마친 리더 '신대철'이 보컬 '김종서'를 불러 별말 없이 그들의 공연을 녹음한 것을 재생시켰다. '내가 이렇게 노래했었나?' 김종서는 아무 말 없이 시나위를 떠났다. 표현과 음역에서 생기는 록그룹의 갈등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오늘은 너무도 원초적인 모습을 통해 그들 서로간의 불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너무도 간단하다.

많은 분들이 예상했던 대로 그들의 역할 문제다. 이건 음악이고 그 어떤 것을 다 떠나 냉정하게 생각하자. 세계 3대 기타리스트라 불리는 '제프 벡'도 이런 말을 하였다.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를 보며 '어! 난 이제 뭘 해서 먹고 살지?' 가시가 있는 말이다. 음악을 떠나 프로밴드는 그것이 그들의 직업이다. 잘하건 못하건 밴드에서는 해당 포지션의 역할을 존중해 주어야 함이 당연한 것이다.

부활 1집부터 살펴보자.

1. 희야
2. 비와 당신의 이야기
3. 너뿐이야
4. 길가의 연인들
5. 인형의 부활
6. 슬픈 환상
7. 사랑 아닌 친구
8. 사랑의 흔적

1. 희야 - 두말 할 것 없는 그들의 대표곡이자 명곡이다. 이승철이 불렀다.

2. 비와 당신의 야야기 - 무려 3번의 히트를 만들어낸 곡이다. 이번에 김경호의 리메이크로 4번째 히트를
                                   기록 할지도 궁금해 진다. 다른 것보다 섹션 부분에 대해 엄청 많은 신경을 쓴듯한
                                   곡이다. 이승철이 부르다가 후렴구는 김태원이 부른다. 이승철은 코러스다.

3. 너뿐이야 - 가사는 좀 유치(?)해 보이지만 멜로디 라인을 인용한 기타리프가 상당히 재미있는 곡이다.
                     이승철이 불렀다.

4. 길가의 연인들 - 내 기억으로는 이승철이 만든 곡일 것이다. 김태원이 불렀다.

5. 인형의 부활 -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곡이다. 어떤 평론가 분이 이 곡을 두고 '부활 1집의 백미'라는 표현
                        을 했다. '김태원이 이곡을 통해 절제된 속주, 섬세한 피킹, 강약을 넘나드는 템포 등 자신의
                        역량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난 잠시 이런 생각을 했다. 리치 블랙모어(Richard
                        Blackmore)가 무지개(Rainbow)위에서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모르긴 해도
                        김태원 보다 그 글에 대해 더 분노 하지는 않았을까 싶다. 국제적으로 비난받을 글이었다.

6. 슬픈환상 -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 곡이다. 이 곡의 후렴은 김태원과 이승철이 불렀다. 멜로디 자체가 듀엣
                    곡이다. 어쩌면 두 사람이 부르는 것이 당연할 듯싶다.

7. 사랑 아닌 친구 - 정통 하드록. 상당히 좋은 곡이다. 이승철이 불렀다.

8. 사랑의 흔적 - 아무리 좋게 받아 들여도 결코 록으로 말할 수 없는 가요다. 영화음악을 위한 곡이라 소개했
                        지만 100% 가요다. 또 김태원의 서정적 정서를 잘 읽을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부활 1집에서 김태원은 자신이 두곡을 부르고 또 두곡은 이승철과 나누어 불렀다. 그 어떤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표면적으로 볼 때 이승철의 역할에 대한 월권(?)이 행사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부활 2집을 살펴보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다. 처음 들었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 콘셉트 앨범이라 부르기에 부족해 보이는 면도 있지만 우리 음반시장을 감안하면 콘셉트 앨범이라 불러도 될 듯하다. ‘우리나라 에서도 이런 음악을 하는 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1집에서 보여준 라우드니스와 리치블랙모어를 조금 당황케 할 만한 부분도 용서(?)가 되었다. 이때부터 김태원을 좋아하게 되었다.

먼저 2집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1집의 '팬타토닉' 스케일에서 2집에서는 '하모닉 마이너와 디미니쉬' 스케일로 완전히 바뀌었다. 1집은 레이보우를 벤치마킹 하였다면 2집은 잉위맘스틴을 벤치마킹 했다고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1. 회상 I
2. 회상 II
3. 회상 III
4. 2月 7日
5. 천국에서
6. 슬픈사슴
7. Jill's Theme

1. 회상 I - 2집 타이틀곡이다. 인상적인 도입부터 여자 아이의 기침소리까지 좋은 곡이다.

2. 회상 II - 7분이 훨씬 넘는 상당히 긴 곡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잊게 만드는 곡이다. 논란을 부를 말은
                일단 자제키로 하고 무엇보다 보컬 라인은 곡 전체와는 다르게 한국을 느끼게 한다. 국악기와 협
                연을 해도 될 만한 상당한 곡이다.

3. 회상 III - 부활 최대의 히트곡이다. 그것이 비록 이승철의 마지막콘서트를 이루어지긴 했지만 좋은 곡이
                 다. 마지막 부분에서 보여주는 '떼창' 부분은 슬픔을 넘어 공포까지 느끼게 만든다. 만약 여성이
                 리드하는 '나나나' 부분이 무반주로 진행 되었다면 여고괴담 삽입곡으로 사용 되도 무방 할 듯싶
                 을 정도이다. 물론 논란의 소지도 있는 곡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한다. 김태원이 불렀다.

4. 2月 7日 - 어쿠스틱 기타 연주곡이다.

5. 천국에서 - 10분이 넘는 대곡이다.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차용하는 등 많은 도전을 보여 준 곡이다.

6. 슬픈사슴 - 김태원이 '어린이 대공원'에서 본 사슴이 슬퍼 보여 만든 곡이라 한다. 김태원과 이승철이 함께
                    불렀다. 노래를 떠나 그 좋은 곳이 요즘 왜이리 비리되는지가 너무 안타깝다. 내 첫 키스의 추
                    억이 담긴 잊을 수 없는 곳……. 난 슬픈사슴 보다 어린이 대공원이 좋다.

7. Jill's Theme - 이탈리아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영화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삽입곡을 테마로한 연주곡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이다.

음반의 우수함을 떠나 그들이 보컬 영역에서 보여주는 불만은 두 가지면 에서 보면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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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승철의 보컬 부분에 대해서 존중받지 못 하였다.
김태원의 지나친 보컬 참여는 이승철의 불만을 고조 시키기에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음악을 위함이라한다해도 결코 변명일 뿐 합리화 될 수 없다. 김태원이 영향을 받았다는 정말 위대한 기타리스트 잉위맘스틴의 경우를 보자. 막마디로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아는 사람이다. 사실 잘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보컬 부분은 참여를 하지 않았다. 잉위맘스틴은 어지간한 보컬들이 따라 올수 없을 정도의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말을 한다. '녹음을 위해 이 노래는 이렇게 했으면 한다는 뜻으로 그 창법을 보컬에게 보여 줄뿐 밴드 내에서 내 위치는 기타리스트이다. 노래는 보컬이 해야 한다.' 지당한 이야기이다. 잉위맘스틴은 김태원이 상당히 영향 받았을 리치블랙모어가 이끌던 레인보우 출신의 세계적 보컬리스트 조린터너(Joe Lynn Turner)와 함께 오디세이를 발표하고 최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비록 모스크바 공연에서 조린터너를 완전 犬무시하는 행위를 하기도 하였지만 앨범이나 라이브에서 노래를 하는 법은 없었다.

또 우리에게 'A Tale That Wasn't Right'으로 너무도 유명한 헬로윈(Helloween)의 경우에도 미하일 키스케(Michael Kiske)를 보컬로 영입하기 이전에는 '헬로윈 = 카이한센(Kai Hansen)'의 공식이 지극히 당연한 카이한센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보컬 영입 후 카이한센은 기타만 연주하였다. 이런 세계적 밴드들도 밴드라 하면 해당 포지션에 대해 존중해 준다. 부활은 그런 기본이 없었다. 혹시 게리무어(Gary Moore)도 있다고 말하고 싶으신 분들은 생각을 좀 바꿨으면 한다. 게리무어는 밴드가 아닌 솔로다. 또 우리나라의 블랙홀의 경우도 주상균의 포지션이 기타&보컬이다. 부활은 김태원 솔로가 아닌 밴드다. 이승철이라는 보컬이 존재하고 있었다.

밴드는 밴드다. 서로 다른 의견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밴드다. 해당 포지션의 역할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그래야 밴드가 운영된다. 노래도 기타도 친고 싶다면 솔로를 하여야 함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더욱이 2집의 경우에는 그 야말로 연주곡 위주다. '회상 II'와 '천국에서'도 연주곡으로 봐야 할 것이다. 결국 2집에서 이승철은 ‘회상 I’을 부른 것 외에는 김태원의 음악 표현을 위해 초대 받은 가수라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김태원을 위한 '부활'의 객원 보컬이라는 표현이 심한 것일까? 이건 각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

두 번째.
이승철의 인기를 위한 베려가 부족하였다.
부활 1집 ‘Rock Will Never Die’가 3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보도 자료가 있다. 먼저 한 가지 우스운 얘기를 꺼내면 당시 10만장, 30만장, 100만장 하는 소리 믿지마라. 우리나라가 원래 ''뻥 뛰기를 잘하는 곳이니 그 말을 고지 믿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 숫자에서 빼기(-)를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나누기(÷)를 해야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대략 2로 나눌지 3으로 나눌지 아니면 그 이상으로 나눌지는 글을 보는 분들의 자유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당시 많은 인기를 누리던 어떤 여가수가 히트시킨 앨범의 실제 판매량이 7만인지 8만인지 였을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얼마로 나눌지는 모르겠지만 부활의 판매고는 상당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당시 음반 홍보에 대한 별다른 기술이 없었던 기획사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이 판매고를 올려 보도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분들이 혼란스러워 했을듯 하다. 1장당 1천원만 남아도 30만장이면 3억일진데 부활 멤버들의 생활은 어려웠다는 부분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해주면 앨범을 발표하고 또 히트를 치고도 판매고가 5천장을 못 넘겨 적자를 보고 2집 발표를 못 했던 가수들도 많았다. 당시 우리나에는 '길보드'가 성행했었다. 또 음반을 팔고 있는 레코드점에서도 돈만 주면 대략 20곡 가까이 베스트 곡을 녹음해 주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었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인기가수는 레코드점을 돌며 본인 스스로 '2천장을 구입했네 3천장을 구입했네'라는 소문까지 나돌았을 정도였으니 너무도 비참한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 하자. 부활은 록음악이지만 상당히 수려한 멜로디를 보여주었다. 또 그들의 데뷔 당시는 록밴드의 최대 전성기에 있었다. 더욱이 대중적 멜로디로 많은 지지를 얻었던 부활은 당시 '유니섹스 패션'을 선 보인 이승철을 중심으로 록그룹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오빠부대'까지 탄생시켰다. 이런 소녀 팬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콘서트는 언제나 성황을 이루었으며 타 밴드보다 안정된 활동을 하였다.

여기서 말하고자 함은 부활 1집에서의 이승철이 신인에 불과하였다면 2집까지 발표하면서 부활을 먹여 살리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김태원과 이승철의 밴드에서의 비중은 거의 비슷해졌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모든것을 떠나 밴드의 프론트맨 역할은 너무도 우수히 잘 수행했다 할 것이다. 이제는 신인 이승철이 아닌 부활의 안정된 활동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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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냉정히 한번 생각해 보자. 음악이고 뭐고를 다 떠나 아주 냉정히 생각해 보자.

당시 모든 음반 제작자들은 이러한 이승철을 탐내고 있었다. 이승철 또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이 있었을 것이고 부활 활동을 통해 싸였던 불만 또한 적지 않았을 터인데 그의 탈퇴는 어찌 보면 당연했던 것이 아닐까?

결국 이승철은 장고웅을 만나 최고의 스타로 성장하여 지금껏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부활을 떠난 이승철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비로소 맘껏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승철의 선택을 비난 하는 글도 여기저기에서 보았다. 결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입장 바꾸어 생각해 보자. 나 같아도 탈퇴한다. 가창력 있겠다, 인기 있겠다, 앨범 활동이 보장 되겠다, 뭘 망설이겠는가.

음악? 음악성?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먼저 현실을 생각해 보자. 로니제임스 디오는 음악성이 없어서 레인보우를 떠났나? 모든 보컬리스트들이 기타리스트의 음악을 위해 존재 하는 것인가? 더 원초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최소한 부활 1집과 2집에서는 외국 곡을 탐한 흔적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당시 김태원의 음악도 '완성'이 아닌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었다. 한국 명반 100선 선정의 이야기와는 본질적으로 틀린 것이니 오해 말기 바란다. 이는 록음악을 많이 들으신 분들이라면 다 알듯 하니 여기에서 그만 하기로 한다.

이는 김태원의 음악 욕심도 있었지만 김태원 개인적인 인기 욕심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난 음악 욕심쪽 보다 개인적 인기에 대한 욕심이 더 크게 작용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밴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승철, 당시에도 무시할 수 없는 가창력을 가졌던 이승철은 모르긴 해도 이로인해 엄청난 스트레스와 불만을 가지고 부활 생활을 하였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물론 전곡을 이승철이 모두 불렀고 밴드곡 중심이라 했다손 치더라도 이승철에게는 음악에 대한 또다른 불만이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김태원의 지나친 욕심과 이승철의 인기가 만들어낸 서로간의 불만…….
이는 김태원이 원인을 제공하였다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오늘은 이승철 입장에서의 불만을 살펴 보았다. 그럼 김태원 입장에서 이승철에 대한 불만은 없었을까?
다음 3편에서는 오늘 못다한 이야기와 '신해철'까지 등장 시키며 김태원의 입장에서 본 불만을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다.

재미없었을 글 끝까지 읽어 주심에 감사드리며 앞서 말했듯이 이 글은 3편까지 이어진다. 성급함 보다 완결 후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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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한민국 황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