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으로 풀어본 김태원과 이승철의 갈등 <마지막 편>
김태원을 추락시킨 이승철과 신해철 그리고 부활
1편에서는 불운의 명곡일 듯한 '희야'를 통해 그들이 가졌을 불만을 살펴보았다.
2편에서는 보장받지 못한 이승철의 '보컬' 영역에 대해 살펴보았다. 개인적인 사정과 고민으로 2편에서 부실했던 부분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은 마지막 3편으로 김태원을 추락시킨 이승철과 신해철 그리고 부활 이라는 제목으로 그들의 음반과 당시 부활이 보여 준 모습에 대한 비판 또 조금의 경험을 조금 더하여 쓰도록 하겠다.
김태원의 안티 신해철
당시 부활의 모습과 상황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인기 록밴드였지만 폭발적인 지지를 받던 그런 밴드는 아니었다. 오히려 록마니아들의 외면을 받던 밴드였다. 그 이유는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먼저 부활 1집에 있는 문제의 글에 대해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다. 부활의 1집 앨범명은 ‘Rock Will Never Die’다. 록에 대한 그들의 거창한 포부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문제는 앨범 재켓 뒷면에 쓰여 있던 '라우드니스를 지옥에 보내겠노라고…….'라는 부분이다. 경복 고등학교 3학년이라던……. 아마도 부활 팬클럽 회장 또는 부회장(명분에 불과할 뿐) '신해철'의 글인 듯하다. 신해철이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당시 정황으로 보면 신해철이 분명하지 않나 싶다. 그 글은 라우드니스가 아닌 김태원을 지옥으로는 아니더라도 그에게서 많은 것을 잃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먼저 라우드니스(Loudness)는 하드록, 헤비메탈에 마니아들에게 있어 최고의 인기 밴드 중 하나였다. 'Like hell', 'Crazy night', 'So lonely', 'Ashes in the sky' 등의 많은 히트곡들은 물론이고 ‘Thunder In The East’는 빌보드 앨범차트 74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특히 라이크 헬(Like hell)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어떠한 이유로도 국내에서는 들을 수 없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밀수입 음반, 미국 판 라이센스, 빽판(복제음반), 친구들과 서로 녹음을 통해 돌려 듣던 록마니아 층의 절대 애청곡이었으며, 아마추어 밴드들의 카피목록에서 거의 빠지지 않았던 교과서와 같은 곡이었다. 당시 이들은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권 록 밴드들에게는 선망 그 자체였다.
이 글은 록마니아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그들의 앨범에 담긴 외국 곡을 탐한 듯한 곡들은 바로 록마니아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미 외국 밴드를 통해 들어 낯익은 음들을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었던 부활 1집, 이 글은 자신감이 아니라 록마니아 층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그 자체였을 뿐이었다. 당시 부활 1집은 독창적이지만 않은, 상당히 유명한 외국 밴드들의 모습을 함께 담은 그런 음반이었다. 하지만 당시 음악평론가들은 빵 앞에서 펜을 굴려야 했던 것인지 아니면 평론가의 자질이 부족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이를 거창히 해석해 주었고 그런 곡들에 대한 연주에 대해서도 평을 하는 웃지 못 할 코미디도 많이 있었다. 이보다 더 서글픈 현실은 그 글을 본 많은 팬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글을 참고하여 음악을 들으며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분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록마니아들은 이를 알고 있었고 이러한 글들은 부활과 점점 멀어지게 하는 결과도 보여주었다. 당시 기획사에 의한 '언플'이라고 믿고 넘어가기로 한다.
만약 '라우드니스'를 향한 그 글만 없었다면 국내 록밴드의 앨범이 많지 않았던 시절 록마니아 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 실정이 그러했기에 부활의 부족한 음반 내용에 대해 격려를 보내는 팬들도 상당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 부활은 그들을 바탕으로 더 크게 발전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상당히 남는다. 이 내용은 부활의 음악을 평가 절하하려함이 아니라 별것도 아닌 것처럼 여길 수 있는 그 글 하나가 록마니아 층에 미친 파장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며, 록마니아와 김태원과의 관계를 말하려 함이다. 또 한국 명반 100선 선정과도 그 본질적 의미가 다른 이야기이니 오해 말기 바란다. 이해력이 빠르신 분은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 터이니 이 부분은 줄이기로 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당시는 록음악 전성기였다. 당시 자신이 좋아하던 가수의 음반을 구입하는 것도 어려웠던,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녹음을 해 듣던 시절이었지만 록마니아들은 해외 록앨범을 수백 장씩 그것도 당시 음반 가격이 2천 5백 원이었다면 명동 밀수입판 전문점을 찾아 수만 원씩을 지불하고도 듣고 싶은 음반을 구입하는 팬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한국 밴드의 록음악은 인정조차 안 하던 절대 록마니아들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또 대부분은 록음악이라 하면 헤비메탈이라고 생각하는 팬 층이 많았다. 이러한 록마니아들은 시나위, 백두산, H2O등을 찾았고 그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록마니아들은 우리나라 대표기타리스트는 김도균과 신대철이라 생각했으며, 김태원은 단지 부활의 기타리스트 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김태원이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루었던 그 아성이 그 글로인해 상당 부분 무너져 버린 것이다.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또 김태원이 왜 그것을 포기했는지 아직까지 궁금하다.
물론 다른 여러 이유도 있겠지만 그 글 하나가 가져온 영향은 상당히 컸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결국 록마니아에게 외면 받은 부활은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과 당시 가요계의 절대적 강자였던 여성 팬들을 확보한 것에 만족하여야 했다. 부활은 이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록마니아에게는 환영받지 못하고 가요팬들의 환영을 받는 록그룹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너무 아쉽다. 만약 김태원이 록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더라면 부활은 더욱 더 성공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이로 인해 김태원이 받게 되는 영향과 그로인해 생겼을지도 모를 불만에 대해 뒤에서 한번 풀어 보도록 하겠다.
결론적으로 그 글이 부활의 전략으로 나온 것이라면 스스로 자충수를 둔 셈이고, 만약 신해철의 생각에서 나온 글이라면 신해철의 말 가지고 음악하려는 습성은 그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록밴드가 아닌 록음악을 연주하는 이승철의 백밴드 '부활'
부활은 2집을 준비하기 전 주요 멤버였던 이지웅이 탈퇴하고 그 자리를 건반주자 서영진으로 메우고 베이스와 드럼도 바꾸었다. 사운드에 대한 변화를 가져 온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듯하다. 기획사측의 이해관계에 의한 일이였을 수도 있고 김태원과 이지웅의 갈등이 커져 이지웅이 탈퇴하였을 수도 있고 또 당시 한창의 인기를 누리던 이승철과 김태원 위주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탈퇴 시킨 것 일수도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승철과 동행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이승철과의 동행은 의문을 가질 필요조차 없을 듯하다. 이승철의 인기는 그들의 안정된 활동을 보장하였을 것이고 또 그의 보이스는 김태원의 음악과 가장 잘 맞는 보이스였을지 모른다. 어찌되었건 김태원과 이승철은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상업적 요소와 음악적 요소를 충분히 갖춘 그들의 2집을 발표하게 된다. 이승철의 보이스와 역량을 잘 살려주기도 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상당히 좋은 음반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음악적으로 호평을 받았으나 부활 사운드의 변화를 못 마땅히 여긴 팬들도 부활의 대열에서 이탈하게 된다. 록팬들의 사이에서 말이 많았던 부활 2집의 변화가 김태원의 새로운 음악의 시도를 위한 것이건 상업성에 물들어 간 것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태원은 최소한 팬들을 잃으면서 까지 그 음반과 그만의 음악을 만들어 가려했음이 더 중요하게 평가 받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밴드의 생명은 라이브다. 자신들의 음악에 동감해 주며 그 음악 자체를 들어주는, 그 음악에 빠져 헤드베잉을 하며 소리를 질러 주는, 음악 그 자체에 젖어들어 주는 그런 팬들이 필요하다. 공연장을 찾는 건 먼 달나라 이야기 처럼 여기던 시절이었으니 공연장을 찾아주는 록마니아 층의 이탈은 김태원에게 많은 상실감을 주었음이 분명할 듯하다. 록 마니아들이 떠난 그 자리에는 대부분 김승진, 박혜성등을 찾던 여성 가요 팬들이 대부분 그 자리를 대신하여 주었다. 물론 부활의 음악을 들으며 지지를 보낸 팬들도 많았다. 하지만 부활의 음악이 아닌 곱상하게 생긴 이승철의 외모와 보이조지를 따라한 듯 한 그의 패션을 좋아하던 팬들로 록마니아들을 대신하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활동을 하며 과연 김태원은 부활의 생활에 만족하였을까?
이제 이야기를 단순하게 풀어보자.
부활의 콘서트는 부활의 음악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이승철을 보기 위한 팬들로 가득 찼다는 말이 된다. 7분, 10분 이런 곡들은 이들에게 자장가 일뿐이다. 김태원의 연주 보다는, 부활의 음악보다는 이승철의 등장만을 기다리는 팬들로 가득한 공연에서 김태원은 그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었을까. 부활은 최소한 공연장에서만은 이승철과 그의 팬들을 위한 이승철의 백밴드라는 느낌을 가지게 했음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부활의 음악은 앨범을 통해 듣는, 콘서트는 이승철을 위한 그런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부활을 연호하는 팬들이 아닌 이승철을 연호하는 팬들 앞에서 기타를 연주해야만 했던 김태원은 자신이 많은 것을 잃어가면서 만든 자신의 음악을 들으러 오는, 부활의 음악을 들으러 오는 팬들 앞에서의 공연을 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을까?
잠깐 한번 생각해 보자. 음반을 통해 평가받던 모습과는 달리 밴드의 생명인 라이브에서는 이승철의 인기에 묻혀 김태원은 그의 음악을 제애로 보여 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 공연이 끝나고 김태원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노래하는 사람이 당연히 인기가 많을 것 이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듯 한데 록밴드의 그것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보컬 보다 기타리스트가 인기를 더 모으는 경향이 더 크다 함이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부활만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런 현실 속에서 김태원은 이승철에게 불만이 없었을까? 글을 읽는 분이라면 어떻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와 관련 된 일화를 잠깐 소개토록 하겠다.
1988년도인지 기억이 흐리지만 그때쯤 인 것 같다. 친구들과 모여 오늘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를 궁리하다가 우연히 부활의 공연 소식을 접했다. 그것이 신문기사인지 잡지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공연이 열리는 마포의 한 호텔로 향했다. 처음 가는 부활의 공연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오지는 않았다. 결코 많지 않았던 나이었지만 우리 같은 연령은 낄 곳이 아니었다. 예상대로 팬들은 이승철을 연호했다.
우리는 부활의 공연에 상당히 실망을 했었다. 먼저 그들의 게스트의 무대였다. 이름이 참 독특하여 20년이 지났음에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먼저 ‘나이테’라는 남성 혼성 듀엣이 무대에 올랐다. 록 콘서트에서 가요를 부르는 가수가 게스트로 오를 수 있다는 참 이색적인 경험도 했다. 뒤를 이어 오른 대학 가요제를 통해 데뷔하기전의 신해철의 무한괘도를 통해 내용 없는 ‘핑크 플로이드’를 보며 당혹감을 조금 느꼈었다. 하지만 이 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김태원이 항상 최고라 말하는 이중산의 무대였다. 나 역시 이중산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연주를 듣는 것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듯하였다. 이중산은 그 유명한 미국 록의 정신적 지주인 로이 부커넌(roy buchanan)의 메시아 윌컴 어게인(the messiah will come again)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이번에는 드러머가 연주 도중 사진 촬영을 위해 드럼 의자에서 일어나 세트에 기대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중산은 날카롭게 드러머 김성태를 째렸고 이내 곳 자리에 앉았지만 그 개념 없어 보이는 촬영자도 문제지만 고등학생 아마추어 밴드도 하지 않는 그런 모습을 프로밴드에서 보여 주었다는 것이 굉장한 충격이었다. 비단 이뿐만 이었을까? 오늘의 주인공인 김태원 또한 실망을 안겨주었다. 연주 도중 입을 벌리고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몇몇 여성 팬들이 ‘저 사람은 왜 입을 벌리고 기타를 치냐? 안 그런 게 더 낳던데’ 라고 객석에서 날린 말 몇 마디에 바로 입을 정위치 시키는 모습을 보여 주는, 기타리스트의 어떤 감정 표출이라고 할 수 있는 김태원 특유의 무대 매너는 그 몇 마디에 바로 무너졌으며, 우리는 김태원에게서 그 어떤 포스도 그 어떤 카리스마도 느끼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두 번 다시는 부활 콘서트에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지 얼마 안지나 부활의 해체 소식을 접하였다.
이미 부활은 최소한 콘서트에서는 이승철을 위한, 록음악을 듣는 가요팬들을 위한 밴드 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해보였다. 수많은 말들을 만들고 있는 회상3을 불렀던 김태원은 ‘저 노래를 왜 저 사람이 불러’ 라는 팬들의 불만을 들어야 했고 그들의 곡이 아닌 화이트 스네이크(White Snake)의 길티오브러브(Guilty Of Love- 기억이 가물하지만 아마 이곡이었던 것 같다)에 팬들은 더 열광적인 성원을 보냈다. 신나는 곡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부활 아닌 이승철의 팬들 중 그 원곡을 들어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김태원은 그 공연을 마치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상황에 대해 김태원은 이승철에 대한 불만이 없었을까. 록마니아와 바꾸면서 까지 만든 부활 2집과 김태원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김태원의 도전이 안타까워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승철에게 빼앗겨 버린 부활
부활은 2집과 함께 해체하고 만다. 이승철의 탈퇴는 김태원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승철의 탈퇴 이유는 여기서 중요치 않다. 그것이 기획사 사이의 이해관계였건 이승철이 스스로 떠난 것이건 중요한 것은 이승철은 떠났고 김태원은 부활이라는 팀명도 사용치 못하게 되었으며 김태원은 오버그라운드 뮤지션이 아닌 또 언더그라운드에서도 크게 환영 받지 못하는 방황의 시절을 겪게 된다는 것이 중요할 듯싶다.
앞서 이야기하였듯 록팬들은 김태원을 떠난 상황이고 이승철은 부활을 유지해 주던 그 '소녀부대'를 이끌고 나가 버린 것이다. 김태원 또한 심기일전 하여 '게임'이란 밴드 명으로 또 다른 도전을 하였으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태원에게 남은 것은 자신을 희생하며 만든 부활 2집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김태원은 부활마저 잃고 만다.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이룬 이승철은 ‘옛 부활 시절 팬들에 대한 답례’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1집 파트 2’를 통해 부활의 노래들을 리메이크하였고 이 곡들이 모두 히트를 하게 되었다. 이로써 공개적으로 이승철이 부활을 가져오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이제 ‘이승철 = 부활‘이라는 공식이 서게 된 것이다.
이승철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부활의 음악이 너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부활 생활에 한이라도 맺혔던 것인지 이승철은 어려운 상황에 있던 김태원에게서 부활마저 빼앗아오게 된다. 당시에는 저작권협회에 그 사용에 대해 적법한 절차만 밟으면 누구나 리메이크가 가능하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당시 김태원은 이승철이 전화한통 없이 그 곡들을 리메이크 했던 것에 대해 상당히 섭섭해 했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리메이크 과정을 떠나 결과적으로 아무런 사실을 모르던 일반 팬들이 본 부활은 김태원의 부활이 아닌 이승철의 부활로 비춰지는 것이 되고만 것이다.
이승철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는 그 자신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김태원이 그토록 노력하여 이루어 놓았던 부활의 음악을 이승철의 인기에 맥없이 잃었던 것이다. 당시 김태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정말 처참하지 않았을까. 그 당시 김태원은 '추락' 그 이상의 비참함을 느끼고 있었지는 않았을까. 만약 부활 3집을 통해 김태원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였다면 아마 지금 대부분의 사람은 '부활 = 이승철'의 공식을 가지며 그 노래를 듣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러한 이승철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나 같아도 이승철의 어떠한 다른 목적에 대한 오해를 할 듯하다. 2편에서 김태원이 원인 제공을 하였다면 이에 대해서 이승철이 더 깊은 '진행'을 시켰음이 분명해 보인다.
부활의 음반과 일화를 통해 살펴본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그들의 불만에 대해 마무리 하면서 당시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다. 부활 해체 이후 몇 년이 지난 90년대 초의 상황을 예를 들면 그 당시의 상황을 더 알 수 있을 듯하다.
아마 1990년도의 일인 듯하다.
모 록 가수의 TV출연의 실화다. 당시 인기를 모으던 가수였다. 그런데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방송에서 그의 백밴드 중 베이스를 담당하던 사람이 입고 나온 옷이 문제였다. 대제국을 상징하는 일본의 ‘일장기’를 그린 옷을 입고 나왔다. 방송이 되었다. 모니터에 걸렸다. 난리가 났다. 나는 당시 그 베이시스트에게 직접 물어 보았다. ‘하하하. 뭔 생각으로 그 옷을 입고 갔어?’ 답은 비참했다. ‘입을 옷이 그것뿐이었어’ 당시 그 베이시스트는 그의 팀명을 ‘백두대간’이니 뭐니 하며 한국적인 록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당시 유행하던 일장기가 그려진 옷은 유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입을 옷이 없으니 입어야 했던 옷일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습지 않은가? 지금이라면 아마도 있는 옷 없는 옷 모두 꺼내 보고 그것도 모자라면 사서라도 입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동네 어디에 가서 단 돈 몇 천원만 주면 살 수 있는 티셔츠 한 장 살돈이 없어서 가장 깨끗했다는 이유로 그 옷을 입고 지금 보다 더 일본에 대해 배타적이던 그 시절에 당당히 공중파 TV앞에 섰다는 것은 그 시절이 만든 비참한 촌극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이 당시의 어려웠던 로커들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빵과 음악. 참 어려운 숙제다.
여기서 이승철이 빵을 선택했다고 비난만 할 수는 없는 듯하다. 또한 김태원의 조금 부족했던 음악을 비난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이승철의 음악도 충분히 사랑 받을 만하고 김태원의 음악도 충분히 사랑 받을 만 하다는 것에 중심을 두고 생각 해 보도록 하자. 다만 참고 할 것은 당시 부활에 대한 인기는 지금의 인기 보다 못했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지금처럼 일반 팬들 모두 알고 있는 부활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쉽게 말해 당시 부활은 지금의 부활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비록 부활이 인기를 얻기는 하였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일부만 알고 있는 밴드였을 뿐이었다. 이승철의 팬들을 통해 부활이 알려진 것은 싫건 좋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승철을 만들어 준 것 또한 김태원임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글을 쓰게 만든 많은 분들의 글대로 부활해체가 그들의 갈등의 이유가 되어 그들 사이에 아직도 감정이 남아 있다면 40대 중반이 된 사람들의 모습인지 참 의심스럽다. 난 이글을 쓰면서도 그들이 갈등을 지금까지 가지고 왔다는 것에 대해 믿지 않고 있다. 설사 당시 그런 감정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제 그들에게 그럴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현실을 비추어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방어를 한다. 물론 지독히도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나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으로 비추어 본다면 자기방어를 한다. 만약 그러한 이유로 김태원과 이승철이 대립하고 있다면 그들의 말은 믿지 말고 음악만 믿어라. 김태원의 주변인은 김태원의 편일 것이고 이승철의 주변 사람들은 이승철의 편일 것이다. 음악만 보라 그러면 답이 나온다. 당시 실정을 보라 그러면 답이 나온다. 누가 잘했고 못했고 는 당시 말하기 좋아하던 그 주변의 철없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여러 모습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기적인 사람, 독선적인 사람, 착한사람, 못된 사람, 나쁜 사람, 좋은 사람등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사람의 모습도 개인 각각의 입장에서 좋은 사람일수도 나쁜 사람일수도 있는 그런 복잡한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김태원과 이승철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두 사람 모두 상당히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자란, 지금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그들은 어쩌면 정말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을 행운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끊임없이 정상의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마지막콘서트는 김태원이 만든 것일까 아님 이승철이 만든 것일까. 한번 판단해 보라. 그러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답과 가깝지 않을까 생각된다. 모든 판단은 글을 읽는 분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 이는 김태원과 이승철의 말이 아니기에 우리의 생각 일 뿐이라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부활은 정동하의 보컬 체제로 잘 운영되고 있다. 비록 인터넷을 통해 보았지만 그들이 라이브를 통해 보여주었던 '소나기'는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사람일은 모르는 일이다. 지금은 그들의 모습을 응원해 주어야함이 바르다 할 것이지만 먼 훗날 이승철과 함께한 부활을 보며 또 한 번 옛 시절을 돌아보는 그런 기회가 오지는 않을까.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부활의 곡들은 부활의 공연장에서 들어야 함이 마땅함을 좀 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야기가 상당히 길어졌다.
총 3편을 통해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그들 사이의 불만을 내 나름대로 음반을 통해 풀어 보려했다. 두 명 중 한명의 광적인 팬인 듯한 분의 글을 보고 내가 왜 이글을 쓰고 있나 싶어 심한 갈등을 느꼈었다. 2편에서 중심을 잃어 3편에서도 만족 할 만한 내용을 다루지 못 한 듯하다. 좀 더 충분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려 낼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음과 더욱이 연재 첫 글이기에 너무도 아쉬운 부분이 많이 남는다. 응원해 주신 이웃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음반을 통해 본 김태원과 이승철의 갈등에 대해 마치기로 한다.



